버스야 돌고 돌아 다시 내게 오라

래원

보세 옷 코디를 갖춰
향수를 뿌리고 나서
멍하니 거울을 봤어
뭔가 어색해 보였거든
친구를 잃은 기분만큼의
발걸음은 가벼워서
너 카드를 두고 나온 것도
깜빡한 거니
목적지에는 차피 나 밖에
없는데 정신은 깜빡깜빡
혼자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
신호는 더럽게도 안 바뀌어
줄이 길게 늘어선 신논현역 앞에
표정들의 무게를 가늠하니 답답해
안내방송에 안주하면서 자다 깨다를
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다 왔네
난 이번에 내려야 되는데
급하게 탄 여성분 너를 닮았네
혹시나 해서 고개를 떨군 채로
눈을 굴리며 불편하게 앉았네
모자를 푹 눌러 쓰고
이어폰 볼륨을 올려
네 향수 냄새가 기억 안 나지만
심박수를 올렸네
내 옆이 네가 아닌 걸 알아
But 대역 죄인 잡고 싶은 손가락
의자의 표면에서 내가 멀어지고
아무런 파동이 없는 공간이 곧
펼쳐지면 느껴 둘만의 숨을
피어싱 끼는 그녀의 살결이 스쳐
내 변태 같은 생각에 불만 있어도
피곤에 찌들어 외로운 뇌를
꺼줄 수는 없잖아
목적지에는 다 와가는데
어느새 그녀는 꿈뻑꿈뻑
혼자서 망상을 한 다음에
신호는 노란색으로 바뀌어
줄이 길게 늘어선 가로등을 지나
츄리닝을 보이며 어깨에 곤히 잠든
그녀는 내 목에 숨을 불었지만
내 숨은 멈춘 게 분명한 시간
나 이번에 내려야 되는데
급하게 탄 여성분 먼저 깨웠네
혹시나 해서 고개를 든 채로
눈을 굴리며 서로 빤히 쳐다봤네
모자를 푹 눌러 쓴 그녀
살짝 보인 미소 아름다워
그 향수 냄새를 기억할 때쯤에
번호 묻기엔 너무 늦었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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