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린 날

ZELO

내겐 와닿지 않던 단어
이젠 무엇보다 와닿어
빼곡히 적어놨던 계절
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

우린 추억들이 참 많아
전부 마음에서 사라져
우린 무서운게 더 많아
만나는 것 마다 도망쳐

사랑이 무너지고
삶에 지쳐갈때
더는 기댈 곳이 없고
더 나아갈 수 없을 때

가장 아름다웠던 날을
떠올리면서 또 하루
아름다웠던 나를
떠올리면서 또 하루

우린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더 예뻤는데
더 망가지기 전에 우릴 담았어야 했는데
이제 너무 늦었나봐, 너도 나도 똑같잖아
다시 좋았던 그때로, 우리의 화양연화

비를 피해 찾은
짧은 처마 밑에
아슬하게 서서
흐르는 비를 보며

어쩌면 이 빗물에
모든 것이 씻겨 나갈지도 몰라
혹시 그럴지 몰라

아직 우리에겐
삶이 존재하고
이름조차 잃어
버린다고 해도

가을이 가고
겨울이 가고
다시 봄을 지나
다시 여름이 와

우린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더 예뻤는데
더 망가지기 전에 우릴 담았어야 했는데
이제 너무 늦었나봐, 너도 나도 똑같잖아
다시 좋았던 그때로, 우리의 화양연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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