미끄럼틀 Slide
Ye Eun An
모랫바닥에 앉아 일어나지 못하는
녹아버린 몸뚱이
머리부터 삼키는 수렁
내가 계단을 올랐나요?
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
미끄러져 내려오던
찰나의 순간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
마음껏 웃었던 것 같기도
아니, 울었던 것 같기도
고통 속에서도 두 발을 옮기는 게 낫다는 걸
알고 있어, 알고 있지만
축축한 흙이 나의 숨을 막아
눈물투성이, 구제 불능의 늪에 사는 괴물이 된 나
나의 이야기
사실은 오르막길보다도
반짝이는 내리막길이
기쁨은 절대로 길지 않다는 것을
알려주어서
두렵고도 무섭지 않니?
짧은 행복 그 뒤의 아득함이
스스로 두른 사슬에 갇힌
늪에 사는 괴물
흐느낌이 들린다면
나, 나의 손을 잡아줘